입력 : 2015-10-21 13:06:36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격언처럼 전해지는 이 말이 최근 아프리카TV의 행보를 대변하는 것 같다. e스포츠 승부조작에 가담한 관련자들의 개인방송을 막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사태의 발단은 ‘스타크래프트2’ e스포츠 대회에 불법 인터넷사설도박(이하 사설도박)이 아직도 활발하며, 프로게임단 주요 관계자들이 부당한 이득을 위해 적극적으로 승부조작을 벌였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부터다.
이에 한국e스포츠협회(이하 KeSPA)는 불법 승부조작에 가담한 자들을 일벌백계하고, 가담자들이 이후 e스포츠를 비롯한 유관분야에서 활동할 수 없도록 막아달라는 뜻에서 아프리카TV를 비롯한 인터넷 스트리밍업체에 요청했다. 승부조작에 가담한 관계자들이 유사업종을 통해 향후 이익을 얻을 방법을 차단해,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한 조치다.
이에 최근 한국에 진출한 트위치TV, 아주부TV 등은 방송제한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인터넷 개인방송이 비록 개인 방송을 대신 송출해주는 플랫폼에 불과하지만, e스포츠의 발전과 건전한 인터넷 개인방송 환경 조성을 위해 돕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하지만 국내 최대의 인터넷 개인방송 플랫폼인 아프리카TV는 승부조작 관련자들의 방송을 막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승부조작 혐의로 죄 값을 치른 선수들은 자연인이기 때문에 그들이 방송하는 것을 막을 명분이 없다는 논리다. 그야말로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과 딱 들어맞는 원칙이다.
실제로 아프리카TV는 e스포츠를 기반으로 불법 사설도박을 벌인 전 프로게이머들을 품고 있다. 그들의 방송은 아프리카TV의 시스템 보호아래 지금도 운영 중이다.
이름을 거론하기도 낯 뜨거워 지는 전 프로게이머 마모씨는 자신이 승부조작에 적극 가담했다. 승부조작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브로커 역할을 수행했다. 이에 대한 징계를 받은 뒤에는 인터넷 개인방송을 통해 수익을 얻고 있다. 게다가 개인방송을 통해 자신은 죄가 없다는 듯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중국에서 열린 대회에 출전하는 등 여전히 ‘프로게이머’에 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는 아프리카TV가 주장하는 죄값을 다 치룬 죄인의 모습과는 달라 보인다. 그의 행동에는 반성의 기색이 없다. 이번 승부조작 사태 가담자들이 제2, 제3의 마모씨가 될 수 없도록 제한해 달라는 요청을 거부한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나 의문이 남는 이유다.
프로게이머, 혹은 프로스포츠 선수는 인기와 스포츠 시장에 기여하는 대가로 연봉을 받는다. 개인의 성적은 팀의 성적으로 이어지고, 팀의 성적이 좋다는 것은 팀을 응원하는 팬들의 기쁨으로 이어진다. 비약하자만 팬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프로선수라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팬들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고 이미지를 지키기 위한 방안으로 프로선수들에게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부여한다.
이는 즐거움을 주고 대가를 얻는 개인방송인 및 사업자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 방송인의 자질이나 과거 행적들이 불량하다면 이들을 대중과 연결한 플랫폼 사업자로서 정당하지 못한 방송은 제재해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아프리카TV측이 밝힌 공식 입장은 플랫폼 사업자로서 책임이나 의무는 도외시 하고 실리는 챙기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아프리카TV가 어떤 곳인가. 방송 중 타 플랫폼을 언급하기만 해도 방송을 못하도록 막는 엄격한 플랫폼이다. 실제로 경쟁 플랫폼으로 옮겨 방송을 진행하겠다 밝힌 일부 BJ는 아프리카TV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했다. 회사에 이익에 영향을 주는 행위는 일벌백계하겠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e스포츠와 건전한 게임문화에 큰 누를 끼친 일당에게는 영화 300의 악역처럼 관대하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죄질과 인과를 살펴보고 대입해야 마땅하다. 굶어 죽기 직전인 아이를 위해 분유를 훔친 어머니에게 돌을 던질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번 승부조작 가담자들에게는 꺼림낌 없이 돌을 던질 수 있다. 적극적으로 가담한 당사자기 때문이다. 승부에 일부러 지고 대가를 받는다. 팬들에게 큰 실망감을 주고 돈을 받는다. 이에 대한 반성 없이 자신이 누를 끼친 콘텐츠로 사욕과 이득을 채우는 모습은 상식적으로도 죄값을 치루고 반성한 범죄자의 모습이 아니다.
그들이 어려서 나쁜 짓인지 모르고 했을 수 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프로게이머는 정기적으로 소양교육을 받는다. 이 중에는 불법 사설도박이 5대 사이버 범죄로 중히 다뤄진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승부조작이 불법, 범죄, 나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즉, 그들을 비호해야할 어떠한 명분도 없다. 아프리카TV가 주장한 죗값을 치룬 범죄자의 정의가 궁금해 지는 대목이다.
게다가 아프리카TV는 다음해부터 ‘스타크래프트2’의 글로벌 e스포츠대회 ‘글로벌 스타크래프트2 리그(GSL)’을 송출할 회사기도 하다. 자신들이 e스포츠 산업에 득을 보겠다고 나선 상태에서 시장에 누를 끼친 이용자들까지 품겠다고 선언한 그들의 아량에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프리카TV에 접속하면 채팅창 최상단에 노출되는 “불법 도박 관련 채팅 내용 게재 행위 적발 시, 해당 아이디의 개인 신상정보는 경찰청 사이버 수사팀에 자동으로 인계됩니다”라는 경고문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여론과 국가의 삼엄한 감시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노출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아프리카TV를 통해 불법 도박에 가담한 자들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고, 지금도 불법 사설도박 방송이 버젓히 영업(?)을 하고 있어서다. 이런 앞뒤가 맞지 않는 원칙에 여러 커뮤니티에서 표출되는 누리꾼들의 분노와 배신감이 커지고 있다.
아프리카TV는 왜 자신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지 생각해 봐야한다. 이해할 수 없는 원칙 고수한다며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려고 이득을 챙기려는 ‘눈가리고 아웅’식 운영은 이용자들의 실망감과 기업이미지만 갉아먹을 뿐이다.
베타뉴스 서삼광 (seosk.bet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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