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일감몰아주기 '미꾸라지' 기업 손본다...조성욱 공정위원장, "'사각지대' 회사만 376개"


  • 조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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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9-09-10 21:24:09

    ▲ 조성욱 신임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취임식 모습 © KBS 보도화면 캡처

    조성욱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달 27일 후보자 신분으로 연 기자간담회에서 "재벌은 지난 몇십 년간 많은 성장을 해왔고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많은 도움을 줬다"면서도 "법을 위반할 경우에는 법 집행을 엄정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엄정한 법 집행'만으로 수십 년간 지속한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끊기는 어려워 보인다. 조성욱 위원장이 입법부터 판결까지 꼬여있는 일감 몰아주기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갈지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10일 KBS에 따르면, 조성욱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갔다.

    조 위원장은 지난달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지명을 받은 이후 줄곧 재벌개혁과 관련해 수차례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순환출자 등 재벌의 지배구조 문제가 다소 해소되면서 구조적 문제보다 행태적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이날 취임식에서 그는 "대기업집단의 일감 몰아주기를 시정하고 대·중소기업간 유기적 상생협력체계를 구축하여 시장생태계가 더욱 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일감 몰아주기나 부당한 내부거래는 효율적인 독립 중소기업의 성장 기회를 앗아갈 뿐만 아니라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해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함에 따라 대기업 자신에게도 손해가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정위와 경제계 안팎의 상황을 고려하면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끊기 위한 신임 위원장의 길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기준대로 본다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하려고 해도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

    조 위원장이 언급한 대기업집단의 일감 몰아주기는 이른바 '총수일가 사익편취' 행위를 주로 가리킨다.

    재벌 총수 일가가 자신들이 직접 보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줘 기업 가치를 높이고, 이를 2·3세 승계 과정이나 지배체제 개편에서 지렛대로 써서 일가족의 그룹 지배력을 확대하는 식이다.

    사익편취 규제는 총수일가 지분이 20% 이상인 비상장사나 30% 이상인 상장회사의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 원 이상이거나 내부거래 비율이 연 매출의 12%를 넘으면 규제 대상으로 삼는다.

    하지만 규제 도입 후 지분을 일부만 매각해 규제의 경계를 회피하는 회사가 늘면서 사각지대가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5일 공정위가 발표한 '2019년 대기업집단 주식소유현황'에 따르면 글로비스(현대차), ㈜SK(SK), ㈜영풍(영풍), KCC건설·코리아오토글라스(KCC), 태영건설(태영) 등 6개 상장회사의 총수일가 지분율이 29% 이상 30% 미만이다.

    1%포인트도 안되는 지분율 차이로 규제를 피해 가는 셈이다.

    총수일가 지분율 20% 이상 30% 미만 상장사와 총수일가 지분율 20% 이상 회사가 50%를 초과해 보유한 자회사를 합하면 모두 376개. 현재 규제대상인 219개보다 많다.

    공정위는 지난해 사익편취 지분율 기준을 상장 여부와 관계없이 20% 이상으로 맞추고, 이들이 50% 초과 지분을 가진 자회사까지 규제대상으로 편입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해 20대 국회에서의 통과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규제 대상이 되더라도 입증은 산 넘어 산이다.

    사익편취 규제는 2013년 10월 처음 도입됐다.

    그룹 내 계열사들이 총수 자녀가 다수 지분을 소유한 회사에 이익을 몰아주는 관행이 대기업집단 전반으로 퍼지면서 규제 필요성이 높아진 결과였다.

    특히 총자산 5조 원 이상 대기업집단의 총수일가에 대한 '맞춤 규제' 성격을 가졌다.

    하지만 규제 시행 후 6년간 사익편취 규제로 시정명령 이상의 제재를 받은 사례는 단 4건뿐이다.

    현대그룹 계열사였던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매제가 보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줬다가 지난 2016년 공정위의 제재를 받았다.

    같은 해 한진그룹이 고(故) 조양호 회장의 자녀인 조현아·원태·현민 씨가 보유한 싸이버스카이에 대한항공 기내면세품 판매 업무를 대행하도록 하고, 마찬가지로 자녀들이 최대주주인 유니컨버스에 대한항공 콜센터 업무를 몰아줬다가 공정위에 적발됐다.

    공정위는 당시 규제 시행 이후 처음으로 현재 한진그룹 회장인 조원태 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후 올해 상반기 공정위가 대림그룹과 태광그룹의 일감 몰아주기에 사익편취 조항을 적용하기 전까지 조사받는 기업은 많았지만, 제재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최초의 고발 사례였던 한진그룹 사건은 대한항공 측이 행정소송에서 승소하면서 현재 공정위가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사익편취 규제 조항인 공정거래법 제23조의2는 대기업들이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를 금하고 있는데, 법원은 이 부당함을 입법 취지와 달리 부당지원에 준해 해석한 것이다.

    사각지대는 늘고, 혐의 입증도 쉽지 않은데 입법부와 사법부까지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입법부와 사법부만 탓할 수도 없다. 공정위 스스로 할 수 있는 조치를 미뤄왔기 때문이다.

    사익편취 규제의 사각지대를 대표하는 사례가 삼성물산의 100% 자회사인 삼성웰스토리와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총수인 이재용 부회장 일가가 31.16%를 보유해 사익편취 규제 대상이다.

    하지만 100% 자회사인 삼성웰스토리,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제일패션리테일, 서울레이크사이드 등 4개사는 규제를 피해갈 수 있다.

    급식업체인 삼성웰스토리는 지난해 매출 1조 8천114억 원 가운데 39.1%인 7천96억 원을 삼성그룹 계열사와의 내부거래를 통해 올렸다.

    지난해 7월 공정위는 삼성웰스토리와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등을 대상으로 부당지원 혐의에 대한 직권조사에 착수했다.

    이들 회사에 사익편취 규제를 적용할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부당지원 혐의를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부당지원은 사익편취와 달리 내부거래가 정상가격에 비해 유리한 조건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면밀하게 입증해야 한다.

    통상 부당지원은 사익편취에 비해 조사기간이 1.5~2배 이상 길어진다.

    공정위는 급식 용역의 정상가격에 대한 조사를 위해 올해 상반기 LG, SK 등 다른 대기업집단 내 급식사업 계열사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삼성웰스토리의 내부거래 비중은 공정위 조사가 시작된 지난해 39.1%로 전년대비 0.7%포인트 늘었다.

    사익편취 사각지대 문제가 계속되자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시행령 규정을 통해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익편취 규제 대상을 정하는 총수일가 지분 20%(비상장사)·30%(상장사) 규정은 현재 공정거래법 시행령으로 정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최근 논평에서 "하위법령 개정만으로 가능했던 상당수의 과제가 2년이 경과하면서 법률개정안으로 국회에 상정되었고, 이 때문에 이번 하위법령 개정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라며 "그 좋은 사례가 사익편취 규제대상 확대다"고 했다.

    시행령만 개정하면 되는 문제를 굳이 법으로 정하고자 개정안을 내 개혁을 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제출한 공정거래법 개정에 대한 논의조차 순탄하지 않은 상황에서 해당 규정을 뒤늦게 시행령 개정으로 돌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베타뉴스 조창용 (creator20@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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