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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불공정 관행 만연…일감몰아주기 사각지대 효성 31개사 최다


  • 조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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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9-09-15 22:13:18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내부 © 삼성전자 제공

    중소기업의 성장을 막아왔던 대기업의 불공정 관행을 KBS 탐사K가 짚어보니 아직도 여전이 만연하고 있는 이유가 있었다. 또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수단으로 활용되는 대기업집단 일감몰아주기의 규제 사각지대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효성그룹이 31개사로 제일 많았다.

    15일 KBS 탐사K에 따르면,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한 달 만에 나온 정부의 대책에 화학물질 안전 관련 제도와 주 52시간 근로제도 등을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5일 "화학물질 관리, 노동시간 등에 따른 애로는 신속하게 해결할 것입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재계의 요구는 한발 더 나아가 이런 규제들을 근본적으로 손보자는 것.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달 14일 "기업들의 활동여건이 최소한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불리하지 않도록..."라고 정부에 대기업들에 대한 규제완화를 주문했다.

    그렇다면, 소재, 장비 등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이른바 후방 산업계의 생각은 어떨까?

    14년간 반도체 장비 업체를 운영했던 유 모 씨, 대기업과의 거래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규제가 아니라 턱없이 낮은 납품 단가였다.

    유 모 전 반도체 장비업체 대표는 "국산화한 장비의 목적이 가격을 싸게 하기 위해서인데, 적어도 한 30% 정도는 싸게 해줘야 하지 않느냐는 그런 논리를 가지고 (압박해 왔죠)."라고 폭로했다.

    이렇듯 낮은 납품 가격은 낮은 기술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유 모 전 반도체 장비업체 대표는 "다음 설비들을 개발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고 해야 하는데, 가격이 낮으니까 개발할 수 있는 여력이 계속 안 생겨나요.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수준 정도로만..."라고 대기업들의 중소기업에 대한 갑질의 폐혜를 토로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업체를 운영하는 유우식 대표도 한국 대기업의 유별난 갑질에 혀를 내두른다. 대기업이 원해서 기술협력을 해도 수억 원이 넘는 비용은 늘 자신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유우식 웨이퍼마스터즈 대표는 "그러지 않아도 다 와서 팔려고, 막 와서 하는데 내가 너희한테 왜 (비용을) 줘야 해?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 거죠."라고 대기업의 횡포를 토로했다.

    상생의 상징인 '공동개발'도 말뿐이었던 적이 많았다고 한다.

    유우식 웨이퍼마스터즈 대표는 "한국에서 공동개발하는 게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희가 다 만들어놓은 거 갖다가 서류 사인할 때만 'JD'라고 해요. '조인트 디벨롭먼트(공동개발)'라고... 그건 숟가락 얹기죠."라고 폭로했다.

    지난달 반도체 산업 선진화 연구회라는 민간단체가 내놓은 보고서는 반도체 소재, 장비, 부품의 국산화를 더디게 한 주요 원인으로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꼽고있다.

    중소기업의 수준을 낮춘 건 바로 대기업이라는 이야기다.

    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 회장은 "이걸 소(재)·부(품)·장(비)의 책임으로 돌릴 것이냐.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하나의 산업이 발전돼 나가는 것은 항상 수요자와 공급자가 같이 상생 협력을 해서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고 짚었다.

    대한상의가 최근 일본과 거래하는 업체 5백 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정부 지원이 필요한 분야로 규제 혁신을 고른 기업보다 대-중소기업 간 협력체계 구축을 꼽은 곳이 더 많았다.

    김은정 참여연대 경제노동팀장은 "재계가 오랜 숙원 사업 등을 이참에 해결해보자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고, 정부는 한시적 효과를 보기 위해 이에 화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굉장히 우려되고 있고요."라고 분석했다.

    일본 수출 규제를 틈타 규제 완화를 주장하기에 앞서 대기업 스스로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편, 규제 대상 지분을 총수일가 사익편취, 일명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회피하는 기업이 2년째 해소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일감몰아주기’ 근절을 재벌개혁 1순위로 내세우고 있는 터라 보다 강도 높은 제재가 이뤄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15일 공정위의 ‘2019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주식 소유현황’에 따르면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수단으로 활용되는 대기업집단 일감몰아주기의 규제 사각지대는 여전했다.

    일감몰아주기는 총수일가 지분이 상당한 계열사에 그룹차원에서 일감 등을 몰아주면서 총수일가에 이익을 몰아주는 행위를 말한다. 공정위는 일감몰아주기를 제한하기 위해 총수일가 지분이 30%(비상장사 20%) 이상인 곳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 23조2를 적용해 사후 제재를 내리고 있다.

    사익편취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회사는 376개사로 지난해와 같았다. 총수일가 지분이 20% 이상 30% 미만인 상장사, 총수일가 지분이 20% 이상인 회사가 50%가 넘는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를 ‘일감몰아주기 사각지대’로 분류한다. 사익편취규제 기준에 미치지 않는 수준으로 ‘턱걸이 지분율’을 관리하며 그룹 지배력을 유지·확대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조성욱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은 재벌정책의 주요 과제로 중견그룹의 일감몰아주기를 감시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다만 총수일가 사익편취 제재와 달리 자산 5조이하 그룹은 부당지원(공정거래법 23조1항)으로만 제재를 내릴 수밖에 없다. 부당지원의 경우 시장의 경쟁을 제한했는지 등 여러변수를 엄격히 따져야 하기 때문에 공정위가 쉽게 제재를 내리기 어렵다는 게 한계다.

    총수일가 지분율이 29%에서 30% 미만으로 ‘30% 규제기준’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상장사는 총 6곳이었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비스, SK그룹의 ㈜SK, 태영그룹의 태영건설 등이다. ㈜SK는 총수일가 지분율 하락으로 올해 규제대상에서 제외됐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사각지대 계열사를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집단은 효성(31개)이다. 넷마블(18개)과 신세계·하림·호반건설(17개)이 뒤를 이었다.


    베타뉴스 조창용 (creator20@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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