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사설

[컬럼]파워포인트 사용 금지령…콘텐츠 가치에 대한 다른 시각


  • 김영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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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0-05-03 14:36:43

     

    알림 : 해당 컬럼은 외부 필자의 성향에 따른 것으로 베타뉴스의 편집방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이점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른바 사무직이라는 직종의 경우 대부분의 작업은 컴퓨터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직장이 어떤 곳이고, 무엇을 하든 그것은 그리 중요치 않다. 근무 시간의 대부분은 손에서 마우스와 키보드가 떠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컴퓨터로 하는 대부분의 작업은 문서를 만들거나 수정하는 일이다.


    사무용 프로그램의 대명사인 MS 오피스는 워드, 엑셀, 그리고 파워포인트와 개인 정보 프로그램인 아웃룩으로 이루어져있다. 가장 쉽고 편하게 문서를 만드는 일은 다름 아닌 워드로 무엇인가를 하는 일이다. 빈 공간에 글자를 써넣어가다 보면 문서가 완성된다. 물론 회사의 경우 이미 만들어진 양식을 채우는 경우도 많다. 어쨌거나 그 중심은 말 그대로 글자(Words)다.


    워드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으면 보통 하는 일은 엑셀이다. 아마 사무실에 엑셀이 없거나, 그럴 리는 없겠지만 엑셀 사용 금지령이라도 내려진다면 다른 일을 찾아야 할 사람들 꽤나 많을 듯싶다. 그만큼 숫자에 대해서는 엑셀은 독보적이다. 계산기가 바로 옆에 있어도 엑셀을 누르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숫자로 이루어진 차트 역시 엑셀의 주요한 전공분야 가운데 하나다. 


    또 다른 플레이어인 파워포인트는 얼핏 보면 무엇에 쓰는 프로그램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문서를 작성하는 기능은 워드에 뒤지고, 숫자를 처리할 때는 엑셀의 힘을 빌려야 한다. 간혹 조직도 같은 그림을 그릴 때는 쓸모가 있지만, 자주 그런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워드나 엑셀에 비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문서를 이리 저리 바꾸는 빈도가 훨씬 많다. 바로 발표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경제신문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통신사와 카드회사 CEO 대담이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관심을 끄는 것은 다름 아닌 회사에 파워포인트 사용을 금지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관료출신의 CEO는 회사의 모든 보고에서 파워포인트 사용 금지,


    MS워드로 5장 이내로 보고할 것을 직원들에게 요구했다고 한다. 얼핏 보면 파워포인트를 무척 싫어하거나 아니면 컴맹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기사를 정독해보면 처리할 내용이 많고, 무엇인가 판단할 것이 많은 CEO일수록 핵심에 바로 접근하기를 원한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는 기사였다. 


    일기를 파워포인트로 쓰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파워포인트로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것은 팀, 부서, 조직을 대표해 발표를 하는 일이다. 발표란 보고이고, 다른 의미로는 설득이기도 하다.


    사실 남을 설득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내용(Contents)이지만, 많은 경우 그 내용을 고민하기보다는 어떤 디자인, 어떤 템플릿, 그리고 글꼴을 무엇으로 할까 같은 사소한 문제로 고민한다. 아마도 그 CEO 역시 이런 고민보다는 핵심에 좀 더 많은 고민을 하라는 뜻으로 파워포인트 사용 금지령을 내렸을 것이다. 


    며칠 전,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 큰 아들 녀석이 파워포인트로 뭔가를 만드는 것을 보았다. 학교에서 발표할 자료라는데 약 일 주일 이상 친구들끼리 조사하고 실험한 것을 정리해서 발표하기 위한 자료였다. 옆에서 살펴보니 문서를 만드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글꼴을 바꾸고 순서를 배열하고, 내용에 맞는 그림과 사진을 찾느라 며칠이 걸렸다.


    답답해서 한 소리 해주고 싶었지만, 그 나이에 무엇인가를 발표하기 위해 칠판에 걸어 넘기는 괘도를 만들던 생각이 나서 어디서 어울리는 그림을 찾는지, 글꼴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를 조언해 주는 선에서 끝났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내가 보기에는 유치하지만, 아들 녀석이 보기에는 사무실 문서 같고 도식적인 선에서 적당한 타협이 이루어졌다. 


    이곳저곳에서 콘텐츠의 중요성, 소프트웨어의 가치에 대해 호들갑이다. “바보야! 핵심은 콘텐츠야”라는 말도 여러 번 들었다. 그리 거창한 것은 모르겠고, 내가 어제 만든 파워포인트를 워드로 옮겨보자. 아니 워드 말고 메모장으로 옮겨보자. 아마 모르긴 해도 스스로 콘텐츠의 가치에 대해 조금은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만은 나도 이런 말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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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타뉴스 김영로 (bear@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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