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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엠바고와 페이퍼 런칭, 누구 위한 것일까?


  • 김영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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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0-12-27 09:53:20

    지난달 나사라는 약칭으로 더 잘 알려진, 미 항공우주국은 우주생물학적 발견에 대한 중대한 기자회견을 갖는다고 밝혀 전 세계인들의 관심을 이끌어 냈다. 그렇지만 이 중대한 발표는 다소 김이 빠지고 말았다.

     

    영국의 대중지 더 선(The Sun)이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다. 발표의 내용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외계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독성이 있는 액체 속에서도 살 수 있는 생명체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미리 공개해 버렸다. 나사로서는 무척 화가 났을 법한 일이다. 

     

    흔히 이런 보도 금지를 엠바고라고 한다. 엠바고(Embargo)의 본래 뜻은 '선박의 억류 혹은 통상금지'이나, 언론에서는 '어떤 뉴스기사를 일정시간까지 그 보도를 유보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기관 등의 정보제공자가 어떤 뉴스나 보도 자료를 언론기관이나 기자에게 제보하면서 그것을 일정시간이나 기일, 즉 해금시간 후에 공개하도록 요청하면, 언론사에서는 그것의 내용을 검토하여 그 때까지 그 뉴스의 보도를 미루는 것이며 혹은 그 요청까지도 엠바고로 부르기도 한다.

     

    신문과 방송으로 뉴스의 생산자가 적었던 시절에는 이런 엠바고가 잘 지켜졌다. 정부기관을 비롯해 뉴스를 제공하는 기관의 힘이 컸을 뿐 아니라, 이를 지킴으로써 얻어지는 이득도 컸기 때문이다. 또한 엠바고를 지키는 이들에게는 확실한 이득을 줄 수 있었고, 반대로 이를 지키지 않은 이들에게는 적절한 응징도 가능했다.

     

    인터넷 매체는 물론 트위터와 페이스북이라는 SNS가 일정부분 기존 언론의 역할을 하는 요즘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앞서 나사의 내용을 더 선이 공개한 방식 역시 그들의 웹 사이트를 통해서였다. 요즈음 한참 지구상을 달구는 위키릭스 폭로 역시 인터넷이라는 수단을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자신들이 정해놓은 엠바고를 자신들이 지키지 않는 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요즈음 한참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인텔의 새로운 프로세서인 샌디브리지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씨넷 등 외신들에 따르면 인텔이 내년 1월 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되는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차세대 샌디브리지 프로세서를 정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제품은 현재 주력 제품인 45nm공정에서 한층 더 향상된 32nm 공정이 도입되고, 더욱 강력해진 소비 전력 대비 성능, CPU와 GPU가 하나의 칩에 통합된 프로세서로 벌써부터 내년 PC 시장을 주도할 제품으로 꼽히고 있다. 이런 내용은 인터넷에 검색만 해 봐도 아주 쉽게 알 수 있는 내용들이다.

     

    문제는 이미 이 샌디브리지를 쓸 수 있는 메인보드가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주요 메인보드 회사를 중심으로  P67, H67 등의 칩셋을 쓴 메인보드가 팔리고 있고, 심지어 배너 광고를 진행하고 있는 회사도 있다. 그렇다면 이들 회사는 어디에서 이 칩셋을 구했을까? 물론 인텔이다. 인텔 아닌 회사에서 P67, H67 칩셋을 만들지도, 팔지도 않는다. 물론 아직은 정식 판매가 아닌 까닭에 인텔 신형 프로세서라든지, 차세대 I코어라든지 등의 두리 뭉실한 표현을 쓰는 경우도 있다. 모두 인텔을 의식한 것이다.

     

     

    국내 최초의 엠바고는 이순신 장군이 자신의 죽음을 잠시 보도하지 말라고 했다는 우스갯소리는 재미있기라도 하다. 신제품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수많은 언론에게 정식으로 공개하고 싶지만, 조금이라도 일찍 연말연시에 조금이라도 매출을 먼저 끌어내려는 제조사들의 속사정은 결코 웃음이 묻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메인보드만 판매하고 CPU는 없으니 구매고객들 입장에서는 그저 작동도 되지 않는 보드를 먼저 샀다는 얼리어댑터의 성취 말고는 얻어지는 어떤 이익도 없다. 

     

    지키지도 않을 엠바고는 말 그대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부디 새해에는 아직 나오지도 않는 제품을 그저 언론 발표만 하는 페이퍼 런칭이니, 지키지 않는 엠바고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베타뉴스 김영로 (bear@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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