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1-10 09:54:10
작년 말 롯데마트가 선보인 이른바 ‘통큰치킨’의 파장은 대단했다. 기존 치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강력한 가격 경쟁력을 무기 삼아, 문을 열자마자 줄을 서서 주문을 해도 오후에나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놀라운 인기를 끌며 전국을 강타했다. 물론 언론의 호들갑도 있기는 했지만...
견디다 못한 동네 통닭집들의 반발, 기존 치킨 프렌차이즈점의 강력한 대응 및 심지어 원가 공개는 물론 청와대 수석은 물론 대통령까지 한 말씀 하시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판매를 중단하고 나서도 그리 쉽게 가라않지 않는 분위기다.
통큰치킨에 이어, 역시 비슷한 가격 파괴 상품인 통큰넷북까지 선보이면서 롯데마트에서는 아예 ‘통큰’이라는 이름을 상표로 등록하는 분위기다. 심지어 통큰PC라는 이름의 데스크톱 PC까지 나왔다.
값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앞세운 통큰치킨의 위력은 거의 핵폭탄 급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논란의 소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마케팅의 효과는 그러나, 통큰넷북에서는 그리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느낄 수 있는 첫 번째 교훈은 컴퓨터와 치킨은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맛이라는 주관적인 잣대가 있기는 하지만, 치킨이라는 거의 완벽하게 대중화된 식품인 까닭에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나 품질에 대한 차이가 크다고 하기 어렵다. 게다가 한 번 잘못된 구매를 하더라도 손해를 보는 비용 역시 충분히 감내할 수준이다. 한 마디로 맛 없으면 다시는 안 시켜 먹으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는 치킨이나 피자와는 달리 영양성분과 제조공정을 분석하지 않아도, 부품이 무엇인지, OS는 어떤 것을 담았는지를 꼼꼼하게 살핀다. 통큰치킨으로 재미를 본 롯데마트가 중소PC제조사인 모뉴엘과 손잡고 29만9천원 넷북을 선보이고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아 무려 1천대의 준비된 물량이 판매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실상 경쟁상대가 없었던 치킨과는 달리 넷북에서 29만9천원은 이미 결코 생소한 값이 아니다.
이미 에이서 등을 비롯한 몇몇 업체에서 30만원이 넘지 않는 넷북을 여럿 선보였다. 사실상 품질 차별화가 거의 불가능한 넷북에서 오로지 내세울 것은 가격밖에는 없는 상황이라 이미 다른 업체의 넷북 역시 충분히 경쟁력 있는 값으로 팔리고 있다.
게다가 넷북은 이른바 죽어가는 제품이다. 물론 아직 절대적인 숫자는 적지 않기는 하지만, 한참 때의 인기를 뒤로 하고 이제 점점 퇴장 무대를 바라보는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배달이나 매장을 직접 방문해야만 살 수 있는 치킨에 비해, 굳이 매장을 방문하지 않아도 온라인에서 주문하면 택배로 받아 볼 수 있는 넷북은 상대적으로 경쟁무대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통큰치킨이건, 통큰넷북이건 여기서 느끼는 진정한 교훈은 이제 제조사가 아닌 유통사에 무게중심이 옮겨졌다는 점이다. 기술개발이 빠른 IT제품의 경우 그동안 신제품을 개발하는 제조사에서 값을 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주 혁신적인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주도권이 제조사에서 유통사로 옮겨지고 있다. 예를 들어 통신요금과 결합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 휴대폰이나 타블렛의 값을 정하는 것은 제조사가 아닌 통신회사, 즉 서비스회사이고 유통사이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예가 바로 통큰치킨이고, 통큰넷북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베타뉴스 김영로 (bear@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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