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1-29 18:43:46
1월 28일 밤 아시안컵 축구 3-4위 결정전이 열리기 직전, MBC는 작은 다큐멘터리를 하나 방영했다. [MBC스페셜] ‘2011, 신년특집 안철수와 박경철’ 편. 김제동의 나레이션으로 김제동이 꼭 만나보고 싶은 친한 형 둘을 찾아가는 1인칭 일기 형식으로 프로그램 구성은 매우 단순했지만 억지로 꾸미지 않은 소박함과 세 사람의 진실하고 따뜻한 대화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기에 충분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카이스트에서 경영학을 가르치고 있는 안철수 교수와 방송인으로서 경제분석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는 박경철 원장은 자신들이 지금 대한민국의 젊은 학생들과 시청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비록 낮은 목소리지만 시종 힘있게 토해냈다.
영상 출처 : MBC스페셜, 신년특집 방송 프로그램 화면
그 중 인상 깊었던 대목이 몇 군데 있다. “20대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라는 김제동의 질문에 박경철 원장은 “미안합니다” 라는 말이라고 했고, 안철수 교수도 같은 심정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원장은 “이런 구조로 가면, 20년 후에 넌 잘 될 것 같았는데 왜 이 모양 됐니?”라는 질문을 받으면 지금 아이들이 ‘더러운 세상을 만나서’라고 답하지 않을까 두렵다며 사회적 불평등과 기회의 차별이 커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또 안철수 교수는 '잘 나가던' 안철수연구소의 대표직을 스스로 물러나면서 자신이 가진 주식을 모두 직원들에게 나누어 준 뒤 미국에 건너가서 공부를 더하고 다시 KAIST의 교수를 맡게 된 이유를 묻자 “남보다 큰 힘을 가진 사람에게는 남보다 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설령 그 일이 자신이 꼭 하고자 했던 일이 아닐지라도 사회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기대와 역할에 대한 책무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한 마디였다.
안 교수는 작년 말 모 인터뷰를 통해서도 현 정부 들어서 정보통신부라는 IT 정책의 컨트롤 타워 자체가 사라지면서 국내 정보통신 산업 정책이 크게 후퇴한 것을 질타한 바 있다. 특히 일부 대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해외에서는 이미 3년 전부터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바일 혁명이 진행되면서 세계 각국이 다시 한번 새로운 창업 열풍이 일고 있는 데 비해 대한민국은 갈라파고스 군도로 전락해 청년들이 창업을 고민하기는커녕 개인의 학점 스펙을 높이는 데 노예가 되어 벤처 도전정신을 찾아볼 수 없게 된 데 대해서 한 마디로 “잃어버린 3년”이라며 아무도 그 책임을 지지 않는 현실을 꾸짖었다.
더불어 창업 열망이 사라지게 된 가장 큰 원인으로 0.1%도 되지 않는 극소수 대기업의 이해관계를 보장하는 기득권의 독점 체제가 어떤 문제의식도 없이 방치되어온 현실을 핵심원인으로 꼽았다. 대기업에 납품해서 성장한 중견 기업이라곤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중소기업 약탈 구조 때문에 정상적인 기업 피라미드 구조가 완전히 붕괴되어버린 우리의 왜곡된 현실을 아프게 꼬집은 것이다.
짧은 다큐 프로그램이었지만 그들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큰 공감의 기초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두 사람이 의사 출신으로 어쩌면 누구보다도 사회적인 기득권을 가지고 그 안에서 삶의 안위를 누릴 수 있었을 터임에도, 그 틀에서 벗어나 각자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도전정신을 보여주고, 이를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나누려는 모습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 사람은 IT 기업인으로, 또 한 사람은 경제 전문가이자 성공한 투자자로서 얼마든지 기존의 사회구조 속에서 개인적인 출세나 부를 더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스스로 그러한 기득권의 틀 속에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고자 과감히 새로운 길을 선택한 진실성과 도전정신....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진 자들을 부러워하지만 혼자서 독식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존경하지는 않는다. 거꾸로 더 많이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나누려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따르며 존경한다. G20 회담 유치를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선 것으로 착각하며 스스로 잘난 척하는 우리의 지도자들이 지금 배워야 할 것은 진정 무엇일까?
그것은 해적들로부터 선원 구출한 사실 하나를 놓고 정부 당국자들이 서로 자신의 치적으로 홍보하고자 기자회견 시간을 두고 다투는 유치한 작태가 아니라,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사장처럼 한 나라의 30년 뒤가 어찌될 것이며, 지금 우리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어떤 비전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탐색하고 그 방법을 고민하는 자세다.
지난 십여 년간 IT의 지나온 발자취를 보라.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즈라는 PC운영체제 하나로 세상을 통일했고, 애플은 '앱스토어'라는 또하나의 콘텐츠 유통 생태계를 창조해 인류를 모바일 혁명의 신세계로 인도했다. 구글은 검색기술과 에드센스라는 온라인 광고 플랫폼을 통해 웹의 제왕이 되었고, 페이스북은 지금 소셜네트워킹 서비스 하나로 웹 플랫폼을 장악해 전 세계 6억 명에 이르는 거대 제국을 건설하고 있다.
* 자료출처: IB타임즈 2011.01.27 기사 중 재인용
지난 26일, 정부는 ‘잃어버린 3년’이라는 세간의 비판을 의식이라도 한 듯 ‘차세대 모바일 주도권 전략’을 통해 4세대 이동통신기술 표준으로 유력한 LTE망 구축에 2014년까지 7조원 가까운 돈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22조 원을 투자한 불도저 삽질에 이어 또 한번 하드웨어 기술과 통신망 인프라만으로 세계를 이겨보겠다는 대기업 위주 사고방식과 구태의연한 발전 전략의 한계가 아닌지 걱정이 앞서는 것은 그냥 혼자만의 우려일까?
베타뉴스 최규문 (letsgo66@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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