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3-15 19:10:07
지난 1월 19일, 코엑스에서 열린 ‘The 5th CVISION’ 컨퍼런스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내용은 역시나 어도비(Adobe) 사가 준비한 ‘디지털 출판의 미래와 어도비’라는 주제의 강연이었다.
글쓴이와 시그래프(Siggraph) 컨퍼런스 2007부터 인연을 맺은 바 있는 연사 폴 버넷(Paul Burnett)은 자신있게 어도비의 새로운 전자책 체계에 대해 소개했다. 요지는 자사의 인디자인(indesign)을 통해 콘텐츠 제작 후 어도비 자체 출판 솔루션을 통해 기기 구분 없이 출판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 어도비 인디자인 워크 플로우. 책을 만드는 순간, 다양한 기기에서 콘텐츠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콘텐츠 작업의 기술적 지원 외에도, 어도비는 자체 서버(콘텐츠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콘텐츠를 배포함으로써 태블릿 기기 시장의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어플리케이션/콘텐츠의 용량에 대한 걱정 또한 해결하고자 하는 자세를 보인다.
인디자인이라는 출판업계의 주된 솔루션을 갖고 있는 어도비의 이 같은 도약은 눈에 띈다. 그럼에도 높은 월비용으로 인해 중소규모의 출판업자는 엄두를 내기 힘들 것이라 생각된다. 또 어도비가 발 빠르게 전자책 시장으로 전환한 연유도 궁금해졌다.
강연 후 폴 버넷의 점심시간을 뺏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이북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자책을 태블릿 위에다 만드는 것이 아니라, N-스크린(혹은 멀티스크린) 시장의 흐름에 대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 N-스크린 게임인 스크래블과 패드 레이서. 가족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다.
한국 언론은 국내 기업인 삼성의 제품을 애플 제품과 비교하는 글을 종종 올리곤 한다. 하지만 어도비와 같은 발전적 사고를 가진 기업은 이러한 기기 비교를 넘어, 콘텐츠의 멀티스크린화, 나아가서는 기기의 구분 없이 콘텐츠가 손쉽게 유통될 수 있는 구조를 선점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 지배적 시장에서 어떠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애플 앱스토어를 뜯어보자. 아이튠즈(iTunes)에서 살 수 있는 아이팟 시대의 음악 콘텐츠부터, 아이폰, 아이패드에 쓰이는 어플리케이션, 그리고 얼마 전 발표된 애플티비(appleTV)의 영상 콘텐츠까지. 그들의 콘텐츠 판매의 범위와 기기의 장르는 끝을 모르고 발전하고 있다.
이 구조를 조금 더 깊이 살펴보자. 과연 왜 애플은 이러한 다양한 기기를 통한 콘텐츠의 확산을 추구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어도비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기본으로 한 N-스크린 콘텐츠에 핵심을 두고 사업을 전환하고 있는 것일까?
▲ 폭발 전초전 상태의 N-스크린 시장
이는 ‘광고’라는 커다란 수익 시장에 기인한다. 지난해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 강연을 되짚어 보면, 애플티비와 함께 알려진 아이애드(iAD)는 위에서 언급한 애플의 다양한 미디어 기기와 수많은 콘텐츠 시장(앱, 영상, 음악 등)을 통해 기기/어플리케이션과 함께 광고시장에 커다란 파급력을 갖게 되리라 본다.
마찬가지로 클라우드화 된 콘텐츠를 갖고 있는 어도비는 지금의 광고 대행사와 같이, 다양한 전자책(잡지/도서) 등에 계약된 기업들의 광고 콘텐츠를 손쉽게 넣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광고시장을 배경으로 한 전쟁은, 구글과 애플의 보이지 않는 N-스크린 시장에서 더욱 극명하게 보여지는데, 애플의 아이폰과 구글의 안드로이드 탑재 스마트폰의 대결 구도도 어찌 보면 애플과 구글의 광고 콘텐츠 따내기 전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 애플의 아이애드와 구글의 애드맙
기기라는 것은 단기간 동안의 트렌드를 형성하며 그 생산비용으로 인하여 쉽게 순이익을 창출하기 어렵지만, 지금과 같은 전환기의 ‘광고’ 시장 점유는 막대하고 지속적인 이익의 창출을 불러올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애써 간과하던 시장에 대해 다시금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의 ‘클라우드’, ‘N-스크린’의 시대 도래에 대비하려면 어떠한 비전을 갖고 임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막대한 양의 콘텐츠가 살아 숨쉬는 인터넷 공간. 만약 우리가 이 살아있는 정보의 장을 이용하여 손쉽게 정보를 재가공하여 더 나은 콘텐츠를 생산 할 수 있다면 어떨까?
브라우저를 통해 인터넷의 정보를 알려주는 HTML(Hyper Text Markup Language)는 마크업 언어로 태그라는 괄호에 둘러싼 구조를 이용, 수식 정보와 내용을 담은 기술언어다.
하지만 기존의 HTML은 이러한 ‘문서의 구조와 내용’을 기술하는 그 기본적인 내용 외에도, 자바, 액티브X 등 문서를 꾸미는 잡다한 것들이 잔뜩 들어간 탓에 순수한 문서의 내용과 구조를 갖고 있어야 하는 마크 업 언어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
▲ HTML5의 주요기능 및 설명 (출처 : 구글 이미지)
그래서 HTML5가 등장했다. HTML5는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며 표준에 맞지 않아 여러 브라우저에서 같은 내용을 보여주지 못하는 기술 언어를 보다 문서의 내용과 구조, 표준화에 충실한 방향으로 하자는 데에 골자를 두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기기에 플래시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 이유로, 바로 이 HTML5를 꼽았다. 꾸미는 객체(플래시)를 통하지 않고, 그 내용 자체를 볼 수 있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점을 예견한 바 있다. 얼마 전 플래시를 제작한 회사인 어도비에서도 플래시의 HTML5 전환 솔루션을 발표해 더 나은 웹 환경을 제공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 HTML5는 보다 쉽고 균등화 된 정보의 제공을 의미한다. 기기와 기술에 연연하지 않고 표준화 된 정보형식을 통해 사용자들에게 항상 같은 모습의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더 이상 콘텐츠의 독점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설명함은 물론이다.
우리 개발자 뿐만 아니라 광고 기획자/사업가들이 ‘콘텐츠의 독점’이라는 마인드에서 벗어나, N-스크린이라는 거대 광고시장과 기기를 아울러, 정보를 융합하는 개념으로 콘텐츠 시장을 확장해석해, 더 큰 시장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 콘텐츠에 기반을 둔 기기 지원 환경
그렇다면 앞으로 이와 같은 HTML5를 통한 정보의 균등한 분배를 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문제점이 산재해 있을까? 정보의 평등한 분배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컴퓨터/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증가한 정보의 중요성은 이제 정보 자체가 갖는 의미보다는 정보를 분석해 내고, 그것을 통해 재창출되는 지적 생산물에 대한 방향으로 옮겨졌다.
그와 함께 이러한 정보를 기기 및 소프트웨어를 통해 접하게 되면서, 사용하는 연령층에 대한 격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50대 이상의 연령층은 정보의 평등한 분배에서 점차 도태되고 있다.
국내 시장에 나와 있는 기기 및 소프트웨어에서 작동 방법에 대한 기계적 이해 없이도 쉽게 쓸 수 있는 사용자 친화적(UX) 콘텐츠엔 무엇이 있을까? 우리들의 일상에서 쓰이는 기기 및 소프트웨어에서 이들의 사례를 충분히 볼 수 있다.
▲90세 할머니의 아이패드 사용 모습.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한 시기다.
이러한 정보의 불평등한 분배 환경은 정보의 접근성에 더 많이, 쉽게 노출된 자들이 정보를 이용해 부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게 되는 구조를 만든다는 문제점도 있다.
이에 따라 값 싼 기기의 지원 등을 내세우며 정치적인 공약을 실행하고 있는데, 이와 더불어, 개개인이 올바른 정보를 검색하고 그것을 재창출 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또 유료화 되어 특정 집단만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가령 CEO에게만 특정 통계치의 분석자료를 제공하는 사이트) 정보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줄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모두에게 제공해야 할 것이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글쓴이의 경우, 논문을 쓸 때 검색 연관어를 이용하면 찾고자 하는 자료를 빠른 시간 내에 정확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검색 연관어를 잘 모를 경우, 직접 도서관에 찾아가 관련 서적 수십 권을 뒤져 해당 부분을 찾아내야 하기에 수 일 혹은 수십 일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확한 검색을 통한 결과물은 간단한 내용 뿐만 아니라, 열람할 수 있는 서적 전체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은 여러 분야의 지식 협회들의 문서 디지털화를 비롯, 구글과 같은 기업에서 독자적으로 실제 서적을 스캔 및 디지털화 하는 작업을 통해 콘텐츠 디지털화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공개된 세계 유수의 미술관 스트릿뷰처럼 정보의 디지털화는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예를 통해 구글 등의 기업이 정보에 대한 넓은 공유와 함께 미래 콘텐츠 시장에 대한 준비를 꾀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 구글이 진행 중인 아트 프로젝트. 유수의 미술관 및 작품을 스트릿뷰로 감상할 수 있다.
단순 기술, 정보에 대한 공유는 시대의 흐름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공유가 이끌어 내는 다각화되고 세분화된 ‘정보의 재창출' 산물을 요즘엔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콘텐츠를 갖고 독점만 해서는 더 이상 이익을 창출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열린 정보를 통해 더욱 다양하고 신선한 콘텐츠의 생성을 산출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러한 콘텐츠를 관리, 보관하는 업무의 중요성 또한 늘어날 것이다.
만약 구글이 자사의 각종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유료로 제공했다면, 다양한 기능, 다수의 사용자를 소유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그들의 주 수입원인 광고 기회를 놓치게 되는 이유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공개’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환경을 선택했다. 그 소중한 산물들을 관리, 보관(archive)해 일반인들의 공감을 얻어내었으며, 자사의 트래픽을 끌어올렸다. 기술/정보의 독점적 소유보다는 공유를 통해 더 나은 환경과 이익 창출 구조를 고민하는 구글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 구글과 마찬가지로 네이버도 오픈 API를 도입했다
앞으로 우리는 기술의 제공으로 인한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가게 될 것이다. 클라우드 서비스로 말미암은 정보의 보안, 그리고 위와 같이 평등하게 분배된 정보를 통해 재창출된 지식의 존중과 보호는 그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문제점일 것이다.
지금 수많은 국가와 기업들이 우리 머리 위를 날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도 할 수 있다. 나는 놈 위로 더 멀리 날면 되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정체된 아이디어와 일반화 된 솔루션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기술자 뿐만 아니라 사회·인문학자 모두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서로의 지식을 융합하여 발전된 결과들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가득 찬 상자 속만 생각하지 말자. 그 상자 밖에 있는 더 넓은 공간을 활용해야 할 때다.
베타뉴스 소준의 (juneuis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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