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사설

소셜시대 리얼리티 쇼의 딜레마 -'나가수' 패러디를 보며


  • 최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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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1-03-21 19:35:16

    평소 TV를 거의 보지 않는 편인데 어쩌다 하필 일요일 밤 그 채널을 켜게 되었을까? 그런 프로가 있다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는데 리모콘으로 채널을 돌리다가 그만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유명 가수들이, 그것도 가창력 뛰어나기로 소문난 가수들이 '서바이벌' 경쟁을 하는 TV 리얼리티 쇼였다. 

     

    모두가 쟁쟁한 실력파 가수들인지라 정말이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싶을 만큼 사람을 빨아들이는 흡입력이 있었다. 반복되는 출연진의 멘트 화면, 음악의 흐름을 끊어놓는 간주 중 평가단의 멘트에, 감질나는 뜸 들이기식 결과 발표까지 시청자의 짜증을 유발하는 요소들이 적지 않았지만 워낙에 출중한 가수들의 훌륭한 경연이었기에 그 모든 짜증 유발 요소들을 감내하고 끝까지 지켜보았다.

     

    최종적으로 꼴찌 한 명을 탈락시키는 프로그램의 룰이 실제 적용되는 회차였기에 모두들 긴장감을 갖고 최종 결과를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참으로 어이 없었다. 일본 열도가 지진에 원전 폭발로 만신창이가 되고 있는 와중에서도 그 방송 결과 자체가 하루 종일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을 정도이니 그 정황을 굳이 여기서 세세히 다룰 필요는 없겠다.

     

    시청자 평가단의 투표에 의해서 1등과 꼴지가 분명히 가려졌고, 꼴찌는 탈락하는 게 룰이었다. 문제는, 정작 그 평가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출연진과 제작진의 '패닉' 상태와 '아노미' 현상이 그대로 노출되더니 탈락자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자는 이상한 결정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녹화현장에서는 오랜 시간 고민이 있었겠지만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잠깐 사이에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그 순간 최종 결과 발표 전에 몇번씩 다짐하고 장담했던 '탈락의 의미'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아니나 다를까 방송 직후부터 하루가 지난 오늘까지도 해당 프로그램 사이트를 비롯해 인터넷 사이트에는 제작진의 무원칙과 안일한 대응을 질타하는 목소리와 더불어 프로그램을 조롱하는 패러디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도대체 왜 일어나고, 이같은 논란 속에서 우리가 진짜로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리얼리티 쇼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닌 진짜 "리얼(실제상황)"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프로그램은 리얼리티 쇼의 진수를 보여주는 데 절반은 성공했다고 평할 수도 있다. 노래 경연 전까지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 또 예측할 수 없었던 결과, 그리고 막상 그 결과가 발표될 때 무대에서 벌어진 순간적인 패닉 상태와 출연자들의 격한 감정 분출, 그리고 긴박한 사태 전개 등등...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매우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다.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지금이 '매스미디어'가 아닌 '소셜미디어의 시대'라는 점을 너무 가볍게 여긴 것이 아닌가 싶다. '소셜네트워크'가 기존의 인터넷 커뮤니티와 구별되는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익명이 아닌 실명"이라는 점, 그리고 "시간차가 아닌 실시간" 미디어라는 점이다.

     

    그날 방청객으로 참여하여 평가 투표에 참여한 사람들은 익명의 네티즌들이 아니다. 일정한 대표성을 가지고 선발된 "시청자 평가단"이었고, 그들은 '실명의 배심원' 노릇을 분명하게 했다. 투표 용지 자체를 기명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집계 장면 방송화면에서 직접 보여주었듯이 그들은 종이로 된 투표용지에 7명의 가수 사진 밑에 자신이 최고라 생각하는 가수를 선택해 표시를 했다.

     

    이런 집단 투표식 순위 평가의 강점은 1등과 꼴찌가 확연하게 갈린다는 점이다. 필자가 과거 몸담았던 조직에서도 이와 비슷한 평가를 해본 적이 있다. 간부급 평가위원 10명 정도가 모여서 동일한 투표권을 가지고 전체 직원 60명을 놓고 고과를 순위로 매기는 집단 투표를 통해서 점수를 합산하는 방식이었다. 이 경우 잘 하는 사람은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가 나오고, 반대로 못하는 사람은 냉혹할 정도로 형편없는 점수를 받게 된다.

     

    정말 무서운 것은 바로 그 집단 평가의 결과이다.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평가를 집단이 내린 합산 평가와 비교해보면 신기할 정도로 무섭게 일치한다. 아마도 이 날 방송의 투표결과 역시 그러했으리라 짐작된다. 꼴찌는 6등과 한두 표 아쉬운 차이가 아니라 상당히 크게 차이가 났을 것이다. 왜 그런지는 굳이 집단지성을 들먹이지 않아도 된다. 대중은 에누리 없이 정직하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범한 가장 큰 실수는 임의로, 즉흥적으로 "룰을 바꿨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보다는 '실명의 시청자 평가단'이 내린 결정, 즉 대중 집단의 평가를 무시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분명한 '약속의 파기'이고, 이는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의 기틀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와 소셜 미디어에서 작용하는 힘과 영향력은 다른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집단의 평판과 믿음, 즉 신뢰에 기반한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의 결과를 놓고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재도전이라는 어정쩡한 '긴급제안'을 받아들인 가수도, 격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막말을 쏟아내며 녹화를 거부한 가수도 아니다. 정작 이번 일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바로 소셜 시대의 핵심이 바로 신뢰라는 점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집단 대중의 평가'를 우롱한 방송사나 제작진의 '소셜에 대한 뒤쳐진 마인드'를 깨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다음 주 이 프로그램의 시청율은 더 올라갈 지도 모른다. 기대치 않았던 '노이즈 마케팅' 효과가 발생할 여지가 무척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보여준 '대중 무시'의 과오는 결코 사람들의 뇌리에서 쉽사리 사그러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 결과는 재도전에 응한 가수에게나 제작진에게 더 냉혹하고 참담한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 점을 올곧게 이해할 때라야만 '소셜 시대에 진정한 리얼리티 쇼'가 비로소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베타뉴스 최규문 (letsgo66@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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