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5-16 09:02:58
도스(DOS)라는 운영체제에서 컴퓨터를 처음 접한 이들에게, 윈도우는 게임 또는 그림 그릴 때나 쓰던 마우스를 본격적으로 쓸 수 있게 만든, 말 그대로 완전히 새로운 세상, 새로운 창이었다.
클릭만으로 프로그램을 작동하고, 복잡한 명령어가 필요 없는 윈도우는, 분명 경쟁사의 그것과 매우 비슷했고 아이디어를 따왔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나 편하게 쓸 수 있는 윈도우는 순조롭게 안착해 지금껏 PC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윈도우를 만든 마이크로소프트의 진정한 무서움은 결코 운영체제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윈도우만큼이나 강력한 엑셀, 파워포인트, 워드와 아웃룩을 묶은 오피스라는 무기는 실제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장 지배력을 이끄는 일등 공신이었다.
최근에는 강력한 경쟁자들에 일정 부분 자리를 내주기는 했지만, 운영체제와 한 몸으로 움직이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갖춘 윈도우와 이를 쓸 수 있는 하드웨어는 설명이 필요 없는 표준이었고 좋던 싫던 간에 모든 이들이 따라야 하는 말 그대로 글로벌 스탠다드였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구글은 왜 크롬북을 선보였나?
구글이 검색엔진이 아닌 운영체제를 선보인다고 했을 때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애플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100%에 가까운 개인용 컴퓨터에서의 운영체제 점유율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애플의 멋진 노트북을 장만하고도 거기에도 윈도우를 설치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잘 알다시피 구글은 잘 만든 검색엔진을 통해 돈을 버는, 어찌 보면 광고회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면서 G메일이라는 당시로는 생각하기 힘들었던 대용량 메일을 무료로 제공했고, 공짜 사진, 동영상의 대명사 유튜브, 지도와 심지어 무료 오피스 프로그램까지 하나하나 사업 영역을 넓혀왔다.
하지만 구글은 자선단체가 아니며 돈을 버는 기업이다. 아무리 그들의 사훈이 “사악해지지 말자”라고 하더라도 결코 자비롭기만한 천사는 아니다. 그래서 구글은 그들이 제공하는 다양한 무료 서비스 대신 이를 통해 더욱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전 세계의 모든 데이터를 검색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글이 조금은 생소해 보이는 구글표 노트북, 이른바 크롬북을 선보인 이유다.
크롬북의 밝은 장점
첫째, 이미 스마트폰을 먼저 선보였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수많은 이들이 안드로이드라는 운영체제를 접했고, 이를 접한 이들의 크롬북에 대한 비호감이나 어색함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만약 반대로 크롬북을 먼저 선보였더라면 상대적으로 복잡한 컴퓨터라는 특성상 결코 쉽게 선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타깃을 기업과 공공시장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Cr-48이라는 모델명으로 처음 선보인 크롬북은 이번 삼성과 에이서에서 선보인 제품들은 1,280x800 해상도의 12.1인치 화면과 인텔 아톰 듀얼코어 CPU, 2GB 메모리, 16GB 저장장치 등을 갖추고 있다. 최신 노트북으로는 어림도 없는 사양이지만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사용하는 크롬북의 특성상 기업과 공공시장에서는 나름 선전할 수도 있을 것으로도 보인다.
세 번째, 풍부한 네트워크 환경이다. 특히 초고속 인터넷이 잘 발달한 우리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고, 작은 크기와 쉽고 편한 관리를 통해 각종 패치나 버전업, 심지어 바이러스 관리 등에 들어가는 비용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앞서 기업과 공공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마지막으로 상당히 많은 프로그램이 무료로 제공된다는 점이다. 이보다 강력하고 달콤한, 매력적인 당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크롬북의 결코 밝지 않은 미래
그렇다면 과연 당신의 사무용 노트북을 크롬북으로 바꿀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첫째는 다시 한 번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액티브 엑스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크롬북으로 은행 접속을 해보면 과연 잘 될까? 업무용 컴퓨터의 특성상 공공기관이나 다른 회사의 전산망에 접속할 때 아무도 안정성과 호환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문제다.
한국만의 독특한 환경도 큰 걸림돌이다. 어떤 회사가 완벽한 크롬북 환경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도 결국 협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회사와의 업무에서는 일정 부분 MS의 힘을 빌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MS워드만큼이나 아직도 한글을 이용해 각종 문서를 만드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클라우드 역시 걸림돌이긴 마찬가지다. 크롬북의 핵심은 모든 SW를 각각의 장치에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구름처럼 클라우드에 띄워두고 그때그때 필요할 때마다 내려 받거나 불러서 쓰는 방식이다. 그런데 과연 보안과 비밀주의에 민감한 우리 시장에서 그런 운용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클라우드의 이상이 생겼을 때 이를 감내하고 받아들일 만한 기업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지 궁금하다. IBM을 사서 잘린 이는 없다는 것이 그 동안 IT바닥의 통설이었다. 과연 크롬북은 그 위치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마지막으로 가격적인 점도 짚어봐야 한다. 본디 크롬북에 기대하는 장점 가운데 하나는 윈도우 버전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싼 값을 꼽은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선보인 가격은 결코 그 가격대의 윈도우 버전에 비해 싸지 않았다. 물론 오피스 프로그램을 비롯한 필수 프로그램을 나중에 사는 값까지 따진다면 경쟁력이 있기는 하겠지만, 소비자들로서는 일단 처음 들어가는 비용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크롬북의 경쟁력이 값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구글은 하드웨어 생산 단가를 낮추려 할 것이다. 삼성전자와 에이서가 크롬북을 생산하는 업체가 되었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은 휴대폰에 이어서 크롬북에서도 삼성과 구글의 협력이 더욱 공고해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실제 그렇다. 삼성은 LCD, 메모리, 낸드플래시 등을 생산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노트북에서는 절대 그 위치가 아니다.
삼성에게 크롬북은 매우 중요한 비즈니스일 것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구글이 전적으로 맡고 오직 하드웨어만 생산하는, 그곳도 냉정하게 말하면 말 그대로 깡통에 가까운 값 싼 크롬북을 연간 수십, 수백만 대를 생산한다고 하더라고 결코 삼성전자에게 큰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이래저래 크롬북은 소비자, 생산자,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많은 이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베타뉴스 김영로 (bear@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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