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10-31 16:17:53
최근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은 주유소에 갈 때마다 오르는 기름값에 한숨을 내쉬기 일쑤다. 특히 원유 가격 등 원가 상승 요인이 발생할 때는 번개같이 오르지만, 원가가 하락해도 요지부동인 기름값을 보고 있노라면 분통이 터지기도 한다.
최근 하드디스크의 가격도 기름값 못지 않은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태국에서 발생한 대홍수로 인해 주요 제조사들의 하드디스크 생산 시설이 직접 타격을 입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공급 부족사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새로 PC를 구매하려거나 하드디스크 용량을 확장하려는 이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만만하던(?) 하드디스크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뻥튀기되면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비싼 돈을 치르고 구매하거나, 아예 구매를 포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일부 소비자들은 ‘하드디스크 업체들이 정유사처럼 인상 소지가 발생하자 득달같이 가격을 올려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라거나, ‘업체들이 사재기에 들어가서 물건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업체 측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특히 일부에서 나온 ‘업계에선 아직 2~3주 분량의 재고가 남아있다’라는 말이 ‘업체들이 물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팔고 있다’인 것 처럼 인식되면서 소비자들의 분노는 더욱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현재 하드디스크의 가격 폭등에는 정말 문제가 없는 것일까.
◇ 업체들의 변명 아닌 변명 “팔고 싶어도 물건이 없다” = 확인해 본 결과 하드디스크를 유통하는 업체들의 속사정도 소비자들과 별 다를 바 없었다. 팔고 싶어도 팔 물건 자체가 아예 없다는 것.
씨게이트 하드디스크 메인 총판의 한 관계자는 “평소 1,000대 단위로 공급되던 하드디스크가 지금은 몇십 대, 그것도 요청할 때만 조금씩 겨우 나오는 상황”이라며 “본사 쪽에 뭔가 타개책을 요청하고 있지만 그쪽도 공식적인 답변도 없어 답답하긴 마찬가지”라고 하소연했다.
웨스턴디지털의 경우는 상황이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웨스턴디지털 메인 총판의 관계자는 “타사 제품의 경우 조금씩이나마 공급이 유지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웨스턴디지털은 공급 자체가 완전 중단된 상태”라고 말했다. 지사를 거쳐 본사쪽에 오더(주문)는 계속 넣고 있지만 선적 일정은 커녕 출고 계획조차 아예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특히 웨스턴디지털의 경우 타사에 비해 생산 시설 거의 대부분이 태국에 집중되어 있어 이번 홍수로 인한 타격이 더욱 심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사재기 가능성 역시 미지수다. 보통 사재기는 해당 제품에 대한 계획적이고 예상 가능한 공급 부족이 있을 때 이뤄지는데, 이번 태국 홍수는 천재지변에 의한 갑작스러운 것이어서 그런 예측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본사 및 대형 총판 차원에서 하드디스크 공급이 ‘씨가 마른’ 것은 글로벌 시장에 비춰 국내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일 가능성도 크다. 시장 논리에 따라 그나마 남은 재고를 시장 규모가 더욱 큰 곳에 우선 배정하다 보면 상대적으로 작은 한국 시장까지 배려할 여력이 없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더군다나 한국의 양 옆에는 세계 최대의 시장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보다 시장규모가 훨씬 큰 일본이 자리잡고 있다. 한때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국내 출시가 거듭 연기되고, 공급량이 부족했던 것도 애플이 중국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선 주문을 통해 우선적으로 물량을 공급받는 OEM 수요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수요 및 실적 예측이 힘든 일반 소비자 시장과 달리 OEM쪽은 수요 파악이 훨씬 용이하기 때문이다.
◇ 하드디스크 가격, 지금은 ‘부르는게 값’ = 결국 현재 국내 하드디스크 시장은 공급이 거의 끊긴 상태에서 중소형 매장 단위에 남아있는 재고가 유통량의 전부인 셈이다. 이는 본사 및 메인 총판 차원에서의 가격 조절이 쉽지 않은 ‘부르는게 값’인 단계에 이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현재 하드디스크 가격 폭등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이 예측 불허인 천재지변에 있는 만큼, 안타깝게도 일반 소비자들은 하드디스크 공급이 정상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1분기 말까지는 마냥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임을 부정할 수 없다.
베타뉴스 최용석 (rpch@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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