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11-28 09:51:02
디지털카메라나 핸드폰이 등장하기 전, 사진은 매우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볼 수 있는, 거의 마술과 같은 것이었다. 물론 폴라로이드 같은 특별한 예외가 있기는 했지만, 사진은 아주 복잡한 전문가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그 사진 산업의 중심에는 언제나 코닥(KODAK)이 있었다.
우리 기억 속에 있는, 카트리지에 든 필름을 만든 회사가 바로 코닥이며, 이미 100년 전에 “당신은 버튼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합니다(You press the button, we do the rest)"란 세련된 광고와 함께 일회용 카메라를 시장에 내놨다. 코닥이 있기 전 예술이었던 사진은 비로소 코닥이 대중화의 물꼬를 트면서 예술과 마술을 넘어 생활이 될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전성기 코닥 광고 문구는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인생의 소중한 순간을 우리는 코닥의 순간이라고 말합니다!”다. 지금 들어도 그 얼마나 자신감 넘치는 멘트인가!
지금으로부터 약 130년 전 뉴욕에서 시작한 코닥은 카메라는 물론 필름, 현상 그리고 인화라는 모든 과정을 어우르면서 그들의 광고 문구대로 추억을 기록하고, “사진=코닥”이라는 인식을 세계인에게 깊숙이 심어주었다.
물론 일본과 독일에 몇몇 경쟁회사가 있었지만, 많은 원천기술과 특허, 그리고 경쟁이 되지 않는 인지도를 갖춘 코닥에게 이들은 경쟁자(Competitor)가 아닌 단순한 모방자(Copycat)에 다름 아니었다. 당연히 실적도 좋아 지난 1980년대 초반에는 전 세계적으로 약 16만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전 세계 필름 시장의 60%이상을 석권했다.
누구나 짐작하듯 코닥의 몰락은 디지털시대에 잘못된 대응이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바로 그 코닥이 그 어느 누구보다도 투자와 연구에 적극적이었다는 점이며, 특허 역시 세계적인 수준의 질 좋은 특허를 엄청나게 보유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1976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한 회사도 코닥이었다.
처음 사진을 만든 것은 코닥이 아니었지만 사진을 산업으로 만든 것은 코닥이었음을 생각하면, 처음으로 디지털카메라를 만들고도 이를 상업화하지 못한 코닥의 실책은 너무도 아쉽고 치명적이다. 결국 그 과실은 소니로 대표되는 일본 디카 업체가 고스란히 챙겼다. 이는 당시에는 필름이라는 너무도 강력한 무기가 있어 하고 굳이 디지털로 전환이 시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1등 기업이 겪는 맹점일 수도 있다.
2011년 현재 코닥의 주가는 1달러도 안 되는 수준이며, 파산 전문 로펌과 계약을 맺으면서 코닥은 꾸준히 부도설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도가 끊이질 않는다. 최근에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코닥이 가진 엄청난 자산, 특히 특허나 약 7,500만 명의 회원을 가진 사진 인화 사이트인 코닥 갤러리까지 내놓았단다. 하지만 아직까지 매각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코닥의 미래를 그리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많지 않은 듯 싶다.
물론 코닥이 갖고 있는 특허는 좀 이야기가 다르다. 코닥이 보유한 특허 가치는 기업 시가총액의 5배가 넘어 진정한 M&A 대상 종결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올 한 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 삼성과 애플의 전쟁 중심에는 바로 특허가 있었다. 세계 최초로 디카를 만든 회사답게 디지털 이미징 원천기술 상당수를 갖고 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코닥이 보유한 관련 특허 가치가 최소 30억 달러로, 코닥 전체 주식 총액의 4-5배는 될 것이라고도 추산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실제로 코닥은 디지털사진 기술과 관련해 무려 1,000개 이상의 특허를 출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쉽게 말해 오늘날 디지털카메라 기능 대부분이 코닥 특허를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카메라라는 것을 생각하면 코닥에 눈독 들이는 회사들이 단지 카메라 업체나 가전업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애플은 얼마전 코닥과의 특허 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코닥은 애플은 물론 블랙베리 제조사인 RIM, 삼성, LG 등에도 소송을 제기했다. 예를 들면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는 이미지 미리보기 기술 등이 바로 코닥의 특허다. 최근에 특허 일부를 라이선스 형태로 3D 영화로 유명한 아이맥스에 팔았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사진의 모든 과정이 디지털로 변하면서 코닥 같이 전통적인 아날로그에 의존하는 기업들이 힘들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닥의 몰락이 충격적인 것은 디지털 시대에는 변화에 뒤떨어지는 다른 어떤 기업도 비슷한 도태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웅변하기 때문이다. 잘 대비해도 그것을 상용화하지 않는다면 무한 경쟁시대에는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코닥은 잘 보여준다.
베타뉴스 김영로 (bear@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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