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12-01 13:51:44
<세계 최초 데스크폰독을 개발한 키유틸리티 김상기 대표>
키유틸리티 김상기 대표. 그는 한국의 ‘스티브잡스 키드’다. 잡스가 세상에 남긴 ‘복음(?)’을 알리려는 듯 인터뷰 내내 디자인을 강조했다. 인생 자체도 잡스를 닮아가고 있다. 그는 몇 번의 성공을 했고, 또 몇 번의 실패를 겪었다.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굴곡진 인생을 택했다. 서울대 디자인학과를 나온 그는 탄탄한 직장이 보장 된 사람이었다. 대학 다닐 때 주식투자로 돈도 많이 벌었다. 통장에 이자만 받아도 평생 먹고 살 정도다.
그런데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을 하다 보니 그 돈 다 까먹었단다. 회사도 들어갔다. 오래 있진 못했다. 그를 아는 한 지인은 “직원이면 주어진 일이나 열심히 하면 그만이지, 매사 CEO처럼 생각하고 질문 한다”며 농을 친다.
회사는 김 대표를 담아낼 그릇이 못됐다. 그는 안정된 직장 생활을 뿌리쳤다. 그리고 험난한 벤처의 격랑으로 뛰어들었다. 5평 남짓한 사무실에 직원 3명, 그가 가진 무기는 ‘디자인 안목’과 ‘아이디어’다. 그는 데스크폰독이라는 아이폰 관련 상품을 개발했다. 무선 스마트폰을 유선 전화기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제품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홍콩 전자쇼에 참여해 업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상담 나온 바이어들이 줄을 이었다. 김 대표는 “제품을 홍콩 전자쇼에서 선보인 후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될 정도로 문의전화가 폭주했다”며 “지금도 제품을 문의하는 상담메일들이 하루에 수십 개 씩 오고 있다”고 웃어보였다.
그는 우연한 기회를 통해 데스크폰독 아이디어를 착안했다. “일본의 한 애플 마니아가 아이팟을 개조해 전화기처럼 만든 사진을 봤습니다. 송수화기에 스피커를 연결한 제품인데 그것을 보고 ‘이거다!’하고 무릎을 쳤죠. 그래서 곧바로 디자인에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전공이 디자인쪽이다 보니 수월하게 제품을 구상할 수 있었죠”
처음 제품을 본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선을 유선처럼 쓸 필요가 있나? 그냥 휴대폰으로 쓰고 말지!”. 한마디로 사업성이 없다는 것이다.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제품이니 낮설어 할 만하다. 그가 확신을 가진 건 의외의 계기 때문이다. 제품 디자인을 홈페이지에 올리자 영국의 한 의사에게 전화가 왔다. 자신의 아내가 심장병 때문에 스마트폰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전자파가 강해 환자에게는 치명적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일반 전화기처럼 쓸 수 있는 데스크폰독은 이들에게 꼭 필요한 제품이었다. 제품을 만들 명분과 확신이 생겼다. 김 대표는 제품생산에 속도를 붙였다. 출시되자 주문량이 폭주했다. 김 대표는 “이 정도로 반응이 뜨거운 줄 몰랐다”며 “유력업체들이 거액의 금액을 제시하고 제품 독점권을 넘기라는 제의를 받아 놀랐다”고 말했다. 당장 대박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초보 사업가에게 현실은 녹녹치 않았다. 막상 제품이 생산공정에 들어가면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공장에서는 제품을 꼼꼼하게 생산하지 못했다. 물건이 마음에 안 들어 몇 번이고 퇴짜를 놨다. 그럴수록 생산이 지연됐고, 바이어들의 독촉전화는 잦아졌다. 그사이 데스크폰독의 아류작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왔다. 대부분 모양만 따라 만든 저질 제품들이었다.
그는 “중국 같은 외국 업체에서 베꼈으면 어쩔 수 없는데, 가까운 지인들까지 내 디자인을 표절해 아류작을 내놓는 것을 보고 인간적 배신감마저 느꼈다”고 털어 놓았다. 이번에도 비싼 수업료를 물었다. 그는 또 툭툭 털고 일어난다. “데스크폰독은 시작일 뿐이죠. 다음에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디자인의 제품을 가지고 도전할 겁니다.”
디자인, 철저히 사용자 관점에서 바라봐야!
“보통 엔지니어들은 물건을 만들 때 개발자 입장에서 만들기 쉽죠. 디자이너는 철저하게 사용자 중심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을 가장 잘 실천하는 곳이 애플입니다.”
‘디자인’에 대한 김상기 대표의 신념은 거의 ‘신앙’ 수준이다. 그는 제품의 성능과 디자인을 별개로 생각하는 국내 제조업체의 관행을 지적했다. 기술은 제품의 성능을 높이고 디자인은 제품의 외관을 꾸며주는 1차원적 인식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디자인이 기술을 아우르는 시대가 왔다. 그런 점에서 그는 스티브잡스의 경영 마인드를 강조했다.
“이 시대 가장 위대한 디자이너는 스티브잡스죠. 그는 모든 것을 사용자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것을 기반으로 사물을 다시 디자인 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그림을 잘 그리거나 유명 디자인학교를 나온 건 아닙니다. 디자인의 가치를 잘 이해할 뿐이죠.”
김 대표는 “단순히 제품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디자인 영역 중 가장 협소한 개념”이라고 말했다. 제품을 사용자 관점에서 바라보고 고민 하는 것에서 현대적 관점의 디자인이 시작 된다는 것이다. 그가 국내보다 해외시장에 먼저 진출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 대표는 “한국기업은 제품의 성능에만 공을 들이고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디자인은 소홀한 경향이 많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그는 주변의 기업들을 만나 디자인 상담을 하면서 많은 조언들을 해주고 있다. 제품의 성능은 좋은데 디자인 때문에 고민하는 회사 사장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최근엔 상담 건수도 늘었다고 한다.
<앞으로 세상은 디자인이 경쟁력! 한국 경영진들도 디자인 안목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터쇼에서 자동차 엔진만 따로 전시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자동차의 성능은 데이터로만 표시하면 됩니다. 결국 소비자에게 먼저 다가서는 건 디자인입니다. 디자인이 제품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시대가 왔습니다”
특히 경영자들의 디자인 안목을 강조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디자이너의 역량이고 둘째 디자인을 대하는 경영진의 마인드입니다”. 그는 디자인은 일부러 배워서 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티브잡스도 디자인을 따로 배운 적은 없다. 그는 대학시절 우연히 청강한 디자인론 수업을 듣고 디자인의 중요성을 깨우쳤다고 한다. 일단 디자인의 필요성을 깨우쳤으면 사물을 디자인적 측면에서 보게 된다고 한다.
“이제 아티스트와 디자이너가 구별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디자인의 첫 단추는 상품기획서입니다. 얼마나 소비자의 입장에서 제품을 기획하는 지가 관건이죠. 그러려면 주관과 객관의 밸렁싱이 잘 맞아야 합니다. 그것이 디자이너의 능력이죠.”
편하고,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보기도 좋은 제품. 그가 말하는 ‘디자인’이란 소비자에 대한 배려,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예의'가 들어있다. 잡스가 물려준 디자인 철학을 김 대표 같은 후배들이 계승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인생 그 자체가 감동적으로 디자인 된 잡스처럼, 그도 디자인을 전파할 '전도사'로 또 한번 도전한다.
베타뉴스 이덕규 (press@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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