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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 15년의 힘, 그 중심에는 ‘린저씨’가 있다


  • 최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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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3-12-03 17:20:39

    엔씨소프트의 MMORPG ‘리니지’가 15번째 생일을 맞았다. 1998년 정식 서비스를 시작해 2014년이 저무는 오늘날까지 큰 인기를 누린 리니지. 그동안 리니지가 엔씨소프트에 안긴 숫자는 꽤 큼지막하다. 최고 동시접속자 수 22만 명, 단일 게임 최초 누적 매출 2억 원… 생성된 누적 캐릭터 수만 우리나라 총인구와 맞먹는 4,980만 1,484개에 달한다.


    기록을 훑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리니지를 즐기는 20대 이상 이용자 비율이 99.5%라는 사실이다. 실제 활동 이용자를 확인하면 30대 이용자가 42.5%, 40대 이용자가 17.7%를 차지한다. 모두 합치면 30대 이상 이용자 비율이 72.6%에 달한다. 초창기 리니지를 즐긴 게이머가 계속 리니지를 즐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리니지를 하는 아저씨’의 줄임말로 일명 ‘린저씨’라 불리는 이들. 리니지의 성장과 지금까지의 인기에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위 수치만 봐도 매우 크다. 때로는 고급 장비를 턱턱 구매하나 컨트롤은 부족한 아저씨로, 때로는 인생의 선배로서 애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는 ‘형님’으로 불리는 린저씨. 리니지 15주년을 맞이해 그들의 이야기를 살펴봤다.


    린저씨 자기진단 테스트, 당신도 혹시 린저씨?


    린저씨 하면 먼저 떠오르는 모습은 아무래도 30~50대 현금 동원력이 있는 남성일 것 같다. 그들의 장점은 역시 무시무시한 ‘장비빨’이다. 남들이 몬스터 한 대 더 때리려고 갖은 손놀림을 펼칠 때 강력한 무기 하나로 조작 실력을 메운다. 왠지 게임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면 키보드는 가끔 채팅할 때 거들뿐, 마우스 하나로 모든 몬스터를 요리할 느낌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린저씨 추정인물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파티원 중에 컨트롤이 떨어지는 게이머, 1시간 동안 인던을 도는데 ‘ㄱㄱ’ 외엔 채팅을 하지 않는 게이머, 복잡한 퀘스트나 공략법을 깨우치기보다는 ‘닥사’로 최고레벨을 찍는 게이머… 사실 요즘처럼 음성채팅을 많이 하는 시대에는 목소리만 들어도 이분이 어르신인지 또래인지는 쉽게 알아차린다. 음성채팅하자는 얘기에 머뭇거리는 기색이라도 보이면 의심이 굳어진다.

    ▲ 린저씨를 보며 슬퍼하는 게이머


    재밌게도 린저씨의 경제력 덕분에 같이 사냥하기를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아이템을 획득할 때 ‘쿨내’를 풍기면서 파티원에게 양보하거나, 물약이 떨어지면 꽉꽉 담아 챙겨주는 등이다. 만약 린저씨가 잔뜩 포진해 있는 길드(혈맹)는 오프라인 모임이 더 신이 날 가능성도 높다. 이를테면 소주가 양주로 변신하는 등의 이치다.


    중요한 부분은 린저씨는 리니지가 아닌 여느 게임에서도 많이 쓰이는 용어라는 점이다. 그런데 엔씨소프트 리니지 게시판에 ‘린저씨’를 검색하면 막상 관련 게시물이 5개 밖에 나오지 않는단다. ‘블소’ 게시판에서 검색하면 1,680건이 나온다는데 말이다. 곧 우리는 무서운 가정 하나를 세울 수 있다. 린저씨는 스스로 린저씨인지 잘 모른다.

    ▲ “아니영 리니지하다 온 아저씨입니다”


    린저씨는 모두 아버지뻘? “오빠 언니도 많거든!”

    그렇다면 리니지는 정말 아버지, 아저씨, 노익장, 어르신, 가장 좋은 말로 삼촌들의 천국일까. 또 상큼한 느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ss피바다ss’, ‘k지존흑풍k’ 등의 아이디만 가득한 남자 훈련소와 다름없을까. 엔씨소프트의 2012년 8월 기준 자료를 보면 꼭 땀 냄새만 가득하지는 않을 것 같다.


    첫째로 리니지 액티브 이용자 나이 분포를 보면, 20대가 26.84%를 차지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다. 40대 이상 30.17%와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형, 오빠라고 부를만한 젊은 층도 두텁다는 사실. 물론 10대는 0.52%로 전멸수준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젊은 피로 마우스를 더 세게 클릭하는 게이머도 많다.

    ▲ 젊은 오빠, 언니도 많은 리니지


    여기에 여성 게이머 비율도 예상외다. 무려 전체 이용자 비율 중 4분의 1을 넘는 26.11%나 된다. 이는 신세대 온라인 게임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비율. 게임에 푹 빠진 당신이 여자 친구를 사귈 확률보다 높은 것 같다. 리니지의 손쉬운 조작성이 오히려 여성 이용자에게 통했으리라는 풀이도 나온다.


    즉 리니지를 즐긴다면 게임 반응과 대답이 좀 느리다고 무조건 “아놔 린저씨삼?”하고 비꼬지 마라. 알고 보면 여성 이용자일 수 있고, 당신의 따뜻한 말과 관심이 결혼이라는 기적을 낳을 가능성도 있다. 음… 솔직히 여성 게이머 비율은 당연히 유부녀, ‘돌씽’ 등을 나눠놓지 않았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하긴 할 것 같다. 뭐라 해도 15년 된 게임이니까.


    PC방이 집일 것 같다? 든든한 형님이 더 많을걸


    린저씨에 관한 내용을 찾다 보면 많은 이들이 온종일 PC방에 앉아 게임 삼매경에 빠진 모습을 그리곤 한다. 하지만 이는 선입견에 가깝지 않을까. 낮게 잡아 10년 동안 리니지 하나로 생활을 영위하기는 그리 녹록지 않다. 직장 생활이나 자영업을 하는 린저씨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력의 지표라고 말하기는 좀 뭐하지만, 모든 온라인 게임 중 최고 가치의 아이템도 존재하는 게임 리니지 아닌가. 집을 팔아서 장만한다고 ‘집판검’이라는 별명도 지닌 ‘집행검’은 몇천만 원을 호가한다. 멧돼지에게 상당히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중형차 한 대를 무기로 차고 다닐 수 있는 이용자가 린저씨다.


    또 앞서도 말했지만 오프라인 모임 ‘현모’의 꽃은 린가씨가 아닌 린저씨다. 형님이 몇 명 오시느냐에 따라 안주가 달라지고 장소가 바뀐다.(최대한 얻어먹자는 얘기는 아니다) 이들이 현모에서 정을 베푸는 것은 비단 경제력이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 같다. 취업 준비생이거나 사회 초년생뻘일 동생에게 밥한 끼 더 사주는, 깊은 애정이 있어서가 아닐까.

    ▲ 린저씨도 화려한 컨트롤을 뽐내던 시절이 있다

     

    린저씨가 만드는 끈끈한 유대감, 리니지 15년의 힘


    게임에서 만난 이와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가기란 그리 쉽지 않다. 다른 게임에 눈 돌리는 일도 많고, 세월이 흐를수록 게임 외에 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십 년이 넘는 세월을 ‘혈맹’이라는 이름으로 뭉친 린저씨의 의리는 보기 좋다. 그들이 쌓아온 추억의 힘은 많은 커뮤니티를 낳았으며, 결혼이나 이웃을 돕는 등 아름다운 이야기도 내놨다.


    물론 지금까지 온라인 게임을 해오며 만난 숱한 이들 중에는 좋은 의미의 린저씨만은 없었을지 모른다. 게임에서도 세대 차이를 느끼거나, 고지식한 부분에 답답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게임에서 기득권적인 모습을 보여 싫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일부다. 조용히 홀로 게임을 즐기다 만난 동생들에게 정을 퍼주는 린저씨도 분명 있다.


    컨트롤 좀 떨어지고 대화가 좀 느릿하면 어떠한가. 이제는 린저씨라는 지칭을 꼭 “리니지하다 온 아저씨냐”는 식의 비꼼보다 애정 어린 별명으로 말하고 싶다. “허허”하고 웃으며 척살… 아니, 인생(게임생) 선배로서 따뜻한 조언을 건넬 그들이니까 말이다. 리니지 15년의 중심에는 린저씨가 있다. 이들은 20년, 30년 뒤에도 리니지를 끌어가는 힘이 될 것이다.

     


    베타뉴스 최낙균 (nakkoon@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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