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0-18 01:50:07
'절친'에 가까워 보였던 국내 굴지의 게임 기업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불협화음이 감지되면서 게임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그야말로 절친한 친구 관계였던 두 회사가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수직관계로 뒤바뀔 수 있다는 신호가 감지됐기 때문이다.
지난 8일, 넥슨코리아는 엔씨소프트의 주식 0.4%(8만8806주)를 장내 매입 방식으로 115억원에 사들였다. 이로써 넥슨이 갖게된 엔씨소프트 지분은 14.68%에서 15.08%로 늘어났다. 이에 엔씨소프트 오너인 김택진 대표가 갖고 있는 회사 지분은 9.98%, 자사주는 8.93%, 국민연금기금은 7.89%가 됐다.
이는 기존과 같이 최대주주라는 점에서는 변화가 없지만, 보유 지분율이 15%를 넘기면서 마음만 먹으면 넥슨이 엔씨소프트에 회사 경영권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넥슨의 엔씨소프트 경영권 확보로 회사 대표가 교체되고, 정책이 바뀌고, 또 조직 체계와 문화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업계의 우려에 넥슨 측은 “단순 투자”라는 입장이다. 또 현재 주가가 과도하게 저평가돼 기업가치 제고 차원에서 지분 매입이 이뤄졌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반면 엔씨소프트 생각은 상반된다. 넥슨의 갑작스러운 결정과 실행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다. 그간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에도 평정심을 유지했던 엔씨소프트가 한마디로 ‘발끈’ 한 것. 넥슨의 행보를 지켜보겠다는 으름장까지 놨다. 이미 두 회사의 신뢰에 금이 가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넥슨 입장에서는 당연한 순서이지만, 게임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먼저 넥슨이 글로벌 경쟁을 위해 '협업'을 외치던 지난 시간이 거짓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경쟁은 정글의 생존 법칙과도 같지만, 그래도 국내 기업은 예로 부터 상도의 의미를 중요시 한다.
또 다른 업계 우려는 엔씨소프트 마저 경영권을 행사한다면, 시장 독식에 대한 문제점이다. 한마디로 네오플, 엔도어즈, 게임하이에 이어서 엔씨소프트까지 넥슨이 합병하면, 국내 게임 시장은 '넥슨 왕국'이 되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넥슨의 엔씨소프트 경영권 확보를 넘어 추가 지분 매입을 통해 적대적 M&A 가능성까지 내다보고 있다. 이번의 지분 인수는 이를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엔씨소프트와 넥슨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개발 콘셉트다. 엔씨소프트가 하나의 게임을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작품으로 만드는 데 탁월한 실력을 발휘해왔다면, 넥슨은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대중성이 짙은 게임을 쉼 없이 잘 만들어 왔다. 두 회사의 분명한 색깔 차이가 있고, 이 때문에 저마다의 강점을 지닌다.
이번 지분 인수로 인한 두 회사의 입장과 반응을 보면서 문득 이런 추측이 든다. 그 동안 트렌드에 맞춰 발 빠르게 신작들을 내놓고 다양한 시도를 해왔던 넥슨 입장에서 소수의 작품을 한땀한땀 개발하는 엔씨소프트가 이제는 답답했던 걸까 하는 생각이다. 더구나 지금은 ‘치고 빠지는’ 모바일 게임 전성시대 아닌가.
그래도 “온라인 게임은 건재하다” 혹은 “건재할 것이다”는 막연한 기대감과 기다림이 슬슬 지칠 때도 됐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엔씨소프트의 개발 철학인 장인정신이 어느 순간부터 옹고집으로 보이기 시작했을 수 있단 뜻이다.
하지만 넥슨의 답변과 입장을 믿고 싶다. 엔씨소프트의 경영권 보장과 협력 관계를 기존과 같이 그대로 이어나가길 많은 이들이 소망한다. 여기에는 엔씨소프트와 넥슨 게임 이용자들도 포함돼 있다.
두 회사가 한 몸이 돼야 시너지 나는 곳도 있겠지만, 적당한 거리를 둬야만 서로의 강점이 빛을 발하는 관계도 분명 있다고 본다. 엔씨소프트와 넥슨이 바로 후자에 속한다. 충분한 협의화 합의 없이 어느 한쪽이 올라서는 수직 관계가 되는 순간 조직은 무너진다.
현재 국내 게임 시장은 해외 게임사의 좋은 양식장이 되고 있다. '롤드컵'의 흥행 몰이를 이어가는 라이엇 게임즈, 국내 게임사 투자를 늘려나가는 거대 중국 자본의 침략과 텐센트의 투자, EA코리아의 '피파 온라인3'의 흥행, 해외 모바일 게임사의 인기, 국내 게임사의 허리를 조이는 정부 규제 등 국내 게임사가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어려운 시기에 민감한 두 공룡 게임사의 균열이 시작됐다.
베타뉴스 김태만 (ktman21c@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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