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9-09 08:28:44
우리네 사회풍속은 폭로하고 고발하는데 인색하다. 이런 행위들을 냉대하는 문화 때문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문제들을 공개하고 사회적 관심을 통해 개선책을 찾으려하는 행위는 당연하고도 가치를 부여해야 할 일이지만, 이런 일에 나선 사람들은 오히려 질시와 비난의 대상이 될 때가 허다하다. 아니 오히려 배신자의 낙인이 찍혀 문제의 주범으로서 지탄을 받아야 할 이들보다 더 가혹한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1894 프랑스 포병대위 A.드레퓌스가 독일대사관에 군사정보를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비공개 군법회의에 의해 종신유형의 판결을 받았다. 이때 소설가인 E.졸라가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논설을 발표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돼 결국 우여곡절 끝에 드레퓌스는 무죄로 석방됐다.
대신에 E.졸라는 큰 시련을 겪어야 했다. 한 개인의 유무죄 차원을 넘어 보수파와 공회파의 정치투쟁의 장으로 번지면서 보수세력으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에밀 졸라는 굽히지 않았다. ‘그가 무죄가 아니라면 내 전 작품이 소멸되어도 좋다’라는 어록까지 남기며 저항하다가 군법회의를 중상모략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영국으로 망명해야 했던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비단 드레퓌스 사건과 같이 센세이셔널한 경우가 아닐지라도 진영의 논리로 불의와 정의, 선악을 가리려는 이들을 매장해버리는 일들은 우리 사회에 빈번하다. 작은 조직에서부터 큰 조직에 이르기까지 이 폐습은 거의 관행적이다. 진실이 묻히고 정직한 이들이 큰 상처를 입는다는 점에서 이 폐습은 과히 폭력적이다.
폭력적이기에 자신이 속한 이너서클의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고난의 행군을 각오하는 일과도 같다. 공동선을 지키는 문제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 엄정해야 할 국가권력 또한 이러한 질곡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우리는 지난 정권에서 여실히 확인했다. 박근혜는 잘잘못의 시비는 차치하고 자신의 권력행사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공개적으로 ‘배신자’ 라는 낙인을 찍어 축출했다. 정치인은 당을 떠나야했고 공직자는 옷을 벗어야 했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참담하다. 적폐는 쌓여갔고, 역사는 후퇴했고, 나라는 최순실의 공화국이 됐으며, 종내는 박근혜 자신마저 수형자의 신세가 됐다. ‘친박’만이 존재하고 ‘반박’의 목소리를 배신으로 몰아세운 행적의 결과다.
사회 구성원들이 불의를 고발하는 증언을 두려워하는 공동체는 결코 진화할 수 없음을 역사는 증거하고 있다. 5‧18 진상규명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증언을 수집하는 중이다. 그날 학살의 현장에 수많은 군인들이 존재했고, 헬기 기총사격은 물론 총탄이 빗발치는 집단 발포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그 수많은 진압병력들 중 어느 한 사람도 그날 가해의 증언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악마적이다.
80년 그날 현장에서 5‧18을 겪은 필자는 그래서 ‘진압군인도 피해자’ 라는 언급을 이제 수긍할 수 없다. 증언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증언하지 않는 피해자는 유령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 진실을 가둬 둔,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날 광주에 왔던 군인들…이제 제발 증언하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은 영원한 가해자일 수밖에 없다.
베타뉴스 박호재 (hjpark@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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